이 글은 1900년대 있었던 항일 의거 활동과 애국 계몽 운동에 관한 정보를 자격증 시험용 정보와 교양용 정보로 나누어 적은 글입니다.
# 항일 의거 활동
(1) 국내
1. 나철, 오기호의 자신회 조직 (을사 5적 암살 시도)
2. 이재명 의거 (이완용 처단 시도, 1909)
(2) 국외
1. 장인환, 전명운 의거 (스티븐스 저격, 1908)
2.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처단 (1909)
- 안중근 :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순국하였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 이유에 대해 그가 동양의 평화를 깬 위험한 인물이며, 일본이 동영 ㅎ평화를 위한 올바른 길로 돌아서기를 촉구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였다. 안중근은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
(3) 의의
일제 침략의 부당함과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국제 사회에 천명
# 애국 계몽 운동
(1) 특징
1. 교육, 언론, 산업 진흥 등 실력 양성을 통한 국권 수호 추구
2. 을사늑약 전후로 활발히 전개
(2) 보안회 (1904)
러.일 전쟁 중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대한 반대 운동 전개 -> 철회 성공
(3) 헌정 연구회 (1905)
의회 설립을 통한 입헌 정치 체제 수립을 추구 -> 일제의 탄압으로 활동 중단
(4) 대한 자강회(1906)
1. 헌정 연구회 계승, 교육 진흥과 산업 육성을 통한 국권 수호 운동 전개
2. 전국에 지회를 설치하고 월보 간행
3.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펴다가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
(5) 신민회 (1907)
- 결성 : 안창호, 양기탁, 이동휘 등을 중심으로 비밀 결사 형태로 조직
- 목표 : 국권 회복과 공화정체의 근대 국가 건설 지향, 실력 양성을 추진하면서 무장 독립 전쟁 준비
- 활동 : 민족 교육 실시 (오산학교, 대성 학교 설립), 민족 산업 육성 (태극 서관, 자기 회사 운영), 국외 독립 운동 기지 건설 (남만주 삼원보에 신흥 강습소 개설)
- 태극 서관 : 이승훈, 안태국 등이 평양 등지에 설립한 서점이다. 신민회의 산하 기관 역할을 하였고, 신민회 회원들의 연락 장소와 집회 장소로 활용되었다.
- 신흥 강습소 : 1911년에 설립되었고, 3.1 운동 직후 신흥 무관 학교로 명칭을 바꿔 1920년 폐교할 때까지 약 20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 해체 :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었다. (1911)
- 105인 사건 : 일제가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을 조작해서 수백 명의 애국 지사를 검거하고 그 중 105명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 해체 이후 : 신민회가 해체되고 항일 인사들이 대거 투옥되자 이승훈과 안창호 등은 실력 양성을 시작하며 실력 양성론을 실현시킬 목적으로 흥사단을 창단(1913)하였으며, 흥사단은 잡지 동광을 간행하는등 항일 의거 활동을 이어갔다.
(6) 항일 언론 활동
대한매일시보와 황성신문 등이 항일 논조의 기살를 게재하고 국채 보상운동을 지원하는 등 항일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7) 의의와 한계
- 의의 :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고 산업 육성을 통한 경제 자립을 추구하였다.
- 한계 : 사회 진화론을 수용한 일부 지식인들이 경제적, 문화적 실력 양성에만 주력, 의병 투쟁에 비판적인 자세
- 신민회 활동을 통하여 극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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