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근대/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

1920년대 무장 독립 전쟁

by ,ㅣ,ㅣ, 2022. 10. 21.
반응형

이 글은 1920년대에 있었던 무장 독립 투쟁에 관한 정보를 자격증 시험용 정보와 교양용 정보로 나누어 적은 글입니다.

 

# 봉오동 전투(1920.6)

(1) 참가 부대

 대한 독립군 (홍범도), 군무 도독부군 (최진동), 국민회군(안무) 등

 

(2) 전개 과정

1. 독립군의 국내 진입 작전 전개

2. 일본군이 두만강 이북의 독립군 추격

3. 독립군 연합 부대가 봉오동 지역 매복 작전으로 일본군 대파


# 청산리 대첩 (1920.10)

  • 백운평과 어랑촌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1) 참가 부대

 북로 군정서 (김좌진), 대한 독립군 (홍범도) 등의 연합 부대

 

(2) 전개 과정

1. 훈춘 사건을 일으켜 일본군의 만주 진입

  • 훈춘 사건 :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일본군이 중국 마적단과 내통하여 일본 영사관을 습격하게 한 사건이다. 일본군은 이를 구실로 중국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었다.

2. 간도 지방의 독립군이 백두산 지역으로 이동

3. 청산리 일대에서 6일 동안 10여 차레의 전투에서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 독립군의 시련

(1) 간도 참변(1920~1921)

1. 1920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만 일본군에 의하여 약 3500여 명이 학살되고, 수천개의 가옥 및 학교, 교회 등이 불에 타는 등 한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2.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의 보복 -> 일본군이 간도 한인촌을 습격

3. 초토화 작전 : 3~4개월간 수많은 한국인을 학살하고 민가와 학교 등을 불태웠다.

 

(2) 독립군의 이동

1. 간도 참변 이후 독립군 주력 부대가 밀산에 집결

2. 러시아의 자유시 (스보보드니)로 이동

  • 약소 민족을 지원하겠다는 러시아 혁명군의 약속을 믿고 일본군의 공격을 피해 이동하였다.

 

(3) 자유시 참변(1921)

1. 약소 민족의 해방 운동을 제원하겠다는 레닌의 약속을 믿고 독립군 일부는 러시아령 자유시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독립군 내부의 주도권 다툼과 러시아 적군과의 갈등이 발생하여 결국 자유시 참변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다수의 독립군이 사망하거나 체포되었다.

2. 자유시의 독립군 통합 과정에서 지휘권 분쟁 발생 -> 러시아 적군이 지휘권 양도를 거부하는 한인 부대 공격 -> 수많은 독립군 희생

 


# 3부의 성립

(1) 배경

1. 독립군의 만주 귀한, 조직 재건

2. 독립 운동 단체간 통합 노력 전개

 

(2) 성격

 민정 기관과 군정 기관으로 구성 되어 자치 정부 기능을 하였다.

 

(3) 성립

- 참의부(=육군 주만 참의부) (1923) : 압록강 건너편 지역,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직속 부대를 표방

  • 대한 통의부 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결성

- 정의부(1924) : 남나주 지린, 봉천 일대를 중심으로 활약

  • 참의부에 참여하지 않은 대한 통의부, 광한단, 의성단 등이 통합하여 결성

- 신민부(1925) : 북만주 일대, 자유시 참변을 겪고 돌아온 독립군이 중심

  • 러시아에서 탈출한 독립군을 중심으로 결성

# 미쓰야 협정 (1925)

  조선 총독부와 만주 군벌간에 체결

  • 독립군의 활동이 위축되는 계기

# 3부 통합 운동

(1) 혁신 의회

북만주 지역에서 결성, 이후 한국 독립 당으로 개편

  • 한국 독립군 편성

 

(2) 국민부

남만주 지역에서 결성, 조선 혁명당 창설

  • 조선 혁명군 편성
반응형

댓글